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플라자 합의 (문단 편집) == 합의의 영향 == 이후 플라자 합의가 채택되자 서독 [[독일 마르크|마르크]]화는 채택 1주 만에 약 7%, 엔화는 8.3%가 각각 상승했고[* 일본은 플라자 합의 전까지 연평균 엔달러 환율이 1달러에 200엔이 항상 넘었다. 그리고 플라자 합의 이후인 1985년에 엔달러환율은 200엔 이하로 내려가면서 엔화가 고평가되기 시작한다.], 이후 2년 동안 달러는 30% 이상 급락하게 된다. 이 달러 약세로 인해 미국의 제조업체들은 가격 경쟁력을 회복하였고, 미국의 대[[유럽]] 무역적자도 줄어들게 되었다. 하지만 엔화 대비 달러의 가치가 50%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대일적자는 크게 해소되지 않았다. 무역수지가 개선되기 시작한 것은 J 커브 이론의 시한인 1년 반을 훌쩍 넘은 2년 뒤인 [[1987년]] 말이었다.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일본]]의 시장개방이 제한적이었고 일본인들의 소비성향도 폐쇄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특히 [[빌 클린턴]] 집권기를 보면 미국이 일본에 시장개방을 강압한 적이 많았다. 이후 [[효고현 남부 지진]]으로 인해 벌어진 엔고 상황[* 플라자 합의 이후 일본의 금리는 2.5% 수준까지 내려갔고 일본내 저금리 환경을 피해 해외 자산에 투자가 확대된 상황이었는데 [[효고현 남부 지진]]이후 보험금 지급을 위해 해외 자산을 매각, 엔화를 사들여야 했다.]에서 엔저를 유도하기 위해 1995년 4월 역 플라자 합의가 성사되었다.[* 이 당시 일본은 1995년의 환율이 평균 1달러에 '''79엔'''까지 떨어졌었다. 미국 대비 일본 GDP의 비율이 1995년에 최고치를 찍었던 이유가 바로 이때의 엔고 때문이다.] 여담으로 플라자 합의로 1986년도부터 1989년도에 이르기까지 [[한국]]은 경상수지 흑자를 보는 등의 이익을 보았는데 일본과 수출 경쟁품목이 많은 상황에서 엔화의 가치가 상승하여 상대적으로 원화 가격이 싸졌기 때문이다. 시기적으로도 유가하락, 금리인하, 1988 서울 올림픽으로 인한 투자확대 등이 동시에 맞물렸고, 이때의 호황을 저유가, 저금리, 저환율이 맞물렸다고 해서 '''[[3저호황]]'''이라고 한다. 이 시기에 한국은 물건이 없어서 못판다고 할 정도로 수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사상 최초로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였다. 또한 한때 외채망국론이 나올 정도로 심각했던 외채가 불과 3~4년만에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1990년 3저가 끝나자마자 경상수지는 다시금 적자로 전환되어 꾸준히 증가했고, 외채도 1989년 270억 달러에서 1996년 1600억 달러로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결국 이런 빚잔치는 [[1997년 외환 위기]]로 끝이 난다.] 이런 호황은 한국 뿐 아니라 신흥국 상당수에게 해당하는 것으로 중국도 개혁개방 정책과 맞물려서 상당한 경제성장을 이루었고, 대만, 태국도 이 시기가 역사적인 호황기로 손꼽히며,[* 특히 태국의 경우에는 1985년부터 1996년까지 12년간을 자국 최대의 호황기로 손꼽는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의 경우에는 자원에 의존하는 비율이 상승했지만 그럼에도 제조업 육성으로 자원값 하락에 따른 손해를 모두 메꾸고도 남는 성과를 올렸다. 물론 모든 개도국이 호황을 누렸다는 뜻은 아니라서 브라질이나 멕시코는 물가상승이나 외채, 악화되어가는 빈부격차로 여전히 골머리를 앓았고, 상술하듯이 소련이나 폴란드, 유고슬라비아, 불가리아, 루마니아를 비롯한 동유럽 각국도 여전히 골골거리기는 매한가지로 이러한 후유증은 2000년대 초반까지 이어졌다. 또한 이 합의는 [[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의 직간접적인 원인 중 하나가 된다. 플라자 합의로 일본의 수출이 감소하면서 성장률이 크게 떨어지자, 일본 정부는 경기 부양책을 위해 금리 인하와 부동산 대출 규제 완화책을 썼다. 이 결과 그렇지 않아도 이미 1980년대 초부터 팽창 분위기였던 일본의 부동산 시장과 주식시장에는 엄청난 거품이 생기게 되었고, 이것이 1980년대의 거품경제로 이어진 것. 물론 이 거품경제와 엔고로 미국과의 경제력 격차가 오히려 크게 좁혀지고 일본 자본이 엔고를 이용해 미국의 기업과 자산을 잇따라 사들이면서 미국내에서도 이거 우리가 일본에게 점령당하는거 아니야?라는 두려움섞인 반응이 나왔지만 1992년을 전후하여 일본의 경제가 침체기에 접어들며 한숨돌렸다. 아무튼 저 플라자 합의 때문에 독일과 더불어 경제적으로 거대한 타격을 입었다. 이 합의에 관한 대책으로 [[루브르 합의]]가 나왔으나, 각국의 이해관계의 불일치로 인해 별 소득은 없었다. 한편 플라자 합의 당시 대장성으로 불린 일본 경제부처는 90년대 후반에 여러 뇌물, 정경유착 스캔들로 신음하다, 2001년 일본 중앙 성청 개편을 통해 [[일본 재무성|재무성]]으로 이름이 바뀌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